“갑자기 인수 제안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느 날 대기업 전략팀이나 PE 심사역에게서 연락이 온다. 처음엔 그냥 미팅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인수 의향이 있다는 걸 눈치챈다. 이 순간부터 창업자는 사업가가 아니라 협상가가 되어야 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창업자가 이 순간에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사가 시작되면 인수자가 요청하는 자료를 뒤늦게 찾아 헤매고, 예상치 못한 리스크가 하나씩 터져 나오면서 가격은 내려가고 클로징은 지연된다. 협상 주도권은 처음부터 인수자 쪽에 있었던 셈이다.
준비된 회사는 다르다. 실사를 빠르게 끝내고, 불리한 조항 하나에 흔들리지 않고, 원하는 가격에 가깝게 딜을 마무리한다. M&A는 준비가 협상력이 되는 게임이다.
1. 재무 자료: 숫자보다 설명이 문제다
인수자가 가장 먼저 요청하는 것이 재무 자료다. 그런데 스타트업에서 감사받은 재무제표가 제대로 갖춰진 곳이 생각보다 드물다.
단순히 재무제표가 없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창업자가 회사 비용과 개인 비용을 섞어 처리한 경우, 실사에서 즉시 불리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소해 보이는 항목이라도 설명이 안 되면 인수자 눈에는 “이 회사는 관리가 안 되는 곳”으로 각인된다. 이후 모든 숫자에 의심이 붙는다.
준비해야 할 것은 최근 3개년 이상의 감사 또는 검토 재무제표, 월별 손익계산서와 현금흐름표, 고객별·채널별 매출 구성 내역이다. 여기에 EBITDA 정상화 자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창업자 급여를 시장 수준으로 조정하고, 일회성 비용을 제거한 뒤 실질 수익력이 얼마인지를 미리 계산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작업을 인수자가 아닌 매각 측이 먼저 해두면 숫자 해석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향후 3~5개년 사업계획도 함께 준비한다. 낙관적인 숫자를 그냥 늘어놓는 게 아니라 가정의 근거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수자는 사업계획서보다 그 숫자의 근거를 더 깊이 들여다본다.
2. 주주 구조: 복잡할수록 딜이 느려진다
주주 구성이 복잡하면 딜 진행이 느려진다. 소액주주, 초기 엔젤 투자자, 연락이 끊긴 전 임직원까지 지분 관계가 얽혀있을수록 매각 동의를 얻는 과정이 길어진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주주간계약(SHA)에 담긴 우선매수권, 동반매도권, 드래그얼롱 조항이다. 어떤 주주가 어떤 권리를 갖는지를 사전에 파악해두지 않으면, 딜이 한창 진행 중일 때 특정 주주의 권리 행사로 협상이 중단되는 상황이 생긴다.
VC 투자계약의 **우선청산권(Liquidation Preference)**은 창업자가 가장 쉽게 놓치는 함정이다. “투자원금의 1x 우선 회수” 조항이 있다면, 매각 대금에서 VC가 먼저 원금을 가져간 후 나머지가 창업자 몫이 된다. 매각 가격이 낮을 경우 창업자가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이 기대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딜을 시작하기 전에 매각 가격 시나리오별로 주주별 분배 구조를 계산해봐야 한다.
스톡옵션 부여 현황도 전수 파악이 필요하다. 미행사 스톡옵션이 클로징 시점에 어떻게 처리될지를 미리 설계해두지 않으면, 임직원 처우 문제가 협상 후반에 별도 쟁점으로 터져 나온다.
3. CB·BW 미전환분: 딜 구조를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을 때 보통주가 아닌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 이 미전환분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M&A가 진행되면 딜 구조가 예상보다 복잡해진다.
**CB(전환사채)**는 투자자가 일정 조건 하에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부채다. M&A 시점에 미전환 CB가 남아있다면 세 가지 경로가 있다. 첫째, 투자자가 클로징 전에 CB를 주식으로 전환하고 해당 주식을 인수자에게 매각하는 방식이다. 전환가액이 매각 가격보다 낮다면 투자자에게 유리하다. 둘째, 인수자 또는 회사가 CB를 액면가에 조기 상환하는 방식이다. 투자자는 전환 차익을 포기하는 대신 원금을 즉시 회수한다. 셋째, 인수 후에도 CB를 그대로 승계하는 방식이다. 인수자 입장에서는 잠재적 희석 부담을 그대로 안고 가는 구조라 대부분 꺼린다.
**BW(신주인수권부사채)**는 채권과 신주인수권(워런트)이 분리된 구조다. CB와 달리 채권 자체가 상환되더라도 워런트는 별도로 살아있을 수 있다. 워런트 행사 시 새 주식이 발행되면서 기존 주주 지분이 희석된다. M&A 협상 과정에서 워런트 보유자와 별도 협의가 필요한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창업자 입장에서 핵심은 CB·BW 미전환분이 완전 희석 기준(Fully Diluted Basis) 밸류에이션에 어떻게 반영되느냐다. 완전 희석 기준으로 계산하면 창업자 지분율이 낮아지고 실수령액이 줄어든다. 딜 시작 전에 잔존 CB·BW 물량을 파악하고 전환·상환 시나리오별 창업자 실수령액을 미리 계산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4. 핵심 계약과 IP: 인수자가 사려는 게 정말 있는지 확인
인수자가 이 회사를 사려는 핵심 이유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기술인지, 고객 기반인지, 팀인지. 그 핵심 가치가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는지, 인수 후에도 유지될 수 있는지가 밸류에이션의 기초다.
주요 고객·공급사 계약에 Change of Control 조항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대주주가 바뀌면 계약을 해지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 조항이 발동되면 인수자가 사려고 했던 핵심 매출이 사라지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 실사에서 이 조항이 갑자기 발견되면 가격이 낮아지거나 딜이 중단된다. 미리 파악해두고 대응 논리를 준비해야 한다.
IP는 회사 명의로 정리돼 있어야 한다. 핵심 기술이나 소프트웨어가 개인 명의로 돼 있거나 아예 등록이 안 된 경우, 인수자 입장에서 무엇을 사는 건지 불명확해진다. 외주 개발자가 만든 소프트웨어의 소유권 귀속 여부, 오픈소스 라이선스 컴플라이언스 문제도 미리 점검해야 한다. 딜 전에 미등록 IP는 등록하고, 개인 명의로 된 자산은 법인으로 이전해두는 것이 기본이다.
5. 딜 구조 전체를 봐야 한다
창업자들이 가장 흔하게 빠지는 함정이 인수 가격 숫자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같은 200억 딜이라도 구조에 따라 창업자가 실제로 손에 쥐는 금액이 크게 달라진다.
현금과 주식 교환 비율을 확인해야 한다. 인수자 주식으로 받으면 즉시 현금화가 안 된다. 인수자 주가가 향후 하락하면 실질 수령액도 줄어든다. Earnout 비중도 중요하다. 전체 대금 중 조건부 금액이 얼마인지, 달성 기준이 인수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꼼꼼히 봐야 한다. Earnout 조건을 달성하기 어렵게 설계한 경우 실제 수령까지 이어지지 않는 케이스가 많다.
Escrow 규모와 기간도 확인한다. 일부 금액이 묶이는 기간이 길수록 창업자 입장에서는 불리하다. 세금 효과도 딜 초기에 시뮬레이션해야 한다.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세율, 법인 구조에 따른 세 부담이 얼마인지에 따라 실수령액이 달라진다.
6. 딜 구조는 핵심 인력과도 연결된다
인수자가 이 회사를 사는 이유 중 하나가 팀이라면, 핵심 인력의 잔류 여부가 밸류에이션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실사에서 인수자가 핵심 개발자 몇 명의 잔류 의향을 확인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나가겠다”고 하면 가격이 내려간다.
클로징 이후 핵심 인력을 어떻게 처우할지를 미리 설계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리텐션 보너스 규모, 기존 스톡옵션 미행사분의 처리 방안, 인수 후 역할과 보고 라인 — 이것들이 불명확하면 핵심 인력이 불안을 느끼고 이탈 준비를 시작한다. 창업자 본인의 잔류 조건도 협상 테이블에서 중요한 변수다. Earnout이 잔류를 전제로 설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마치며
스타트업 M&A는 창업자에게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다. 딜이 시작되고 나서 준비하면 이미 늦다. 인수자 측 팀은 수십 건의 딜을 해온 전문가들이다. 재무 자료, 주주 구조, CB·BW 처리, 핵심 계약, IP — 이 다섯 가지가 정리돼 있는 상태로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단순히 준비 유무가 아니라 협상 전체의 주도권이다.